차별을 조장하는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을 거부한다.


「헌법 및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함과 아울러...(법무부 훼손된 차별금지법안 1.제안이유 중)」


그런데 말입니다.


“동성애자인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나는 차별받아도 됩니까?

베트남에서 온, 한때 B형 간염 보균자인 나는 차별받아도 됩니까?

동거하거나 비혼이거나 한부모인 가족으로 사는 나는 차별받아도 되는 겁니까?

내가 만일 여성이라면, ‘성별’이 차별 금지 항목에 들어가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 법안이 이대로 통과되면, 나는 어차피 차별받을 것인데요.”


 지난 10월 2일 법무부에서 차별금지법안을 입법 예고한 이후 20개의 차별 금지 영역 중 7개의 항목, 성적 지향, 학력, 병력,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이 삭제되었다. 한달 여 만에 법무부의 공식적 입장 표명이나 과정에 대한 그 어떤 설명조차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7개 영역을 삭제한 조치로 이제 차별금지법의 본래 취지는 크게 훼손되었으며 오히려 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법으로 전락했다.      


이에 우리는 법무부와 차별금지법 훼손에 앞장서온 일부 대형 보수 기독단체들과 재계 등에,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사회 전체에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1. 보호받 인권과 그렇지 않은 인권을 분리할 수 있는가. 

 차별 금지 대상에 포함된 13개 영역과 삭제된 7개 영역은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다. 한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는 다양한 요건들이 동시적으로 얽혀 구성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학력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레즈비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동성애자인 동시에 '여성'이며 또한 저학력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훼손된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이나 학력 등 삭제된 7개 항목과 무관하지 않은 여성이 ‘성별’ 로는 차별받지 않으나 삭제된 7개 항목 중 어느 하나에 포함된다면 차별받아도 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만약 한부모 가정에 속해 있다면 그 역시 장애로 차별받지는 않지만 ‘정상 가족’ 이 아니라는 이유로는 차별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여성의, 그 장애인의 인권은 이미 사라진 것이다. 법무부는 그들의 ‘어떤 인권’ 을 보장하겠다는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각각의 영역이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 없이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취급하는 파편적인 인권 개념으로는 누구든 차별받을 가능성에 노출되며 단지 선택된 소수의 개인만을 보호한다.

 훼손된 차별금지법이 말하는 ‘전반적인 인권’ 이란 과연 누구의 인권인가. 이번에 포함된 13개 영역의 정체성과 삭제된 7개 영역의 정체성을 복합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개인들의 인권은 어떤 때는 보호받을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차별받아도 되는 그러한 종류의 것인가. 그것이 법무부 차별금지법을 훼손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말하는 ‘보편적 인권’ 인가.         

2. 누구를 위한 삭제조치인가.

 훼손되기 전의 차별금지법은 징벌배상제나 강제이행금 부과, 시정 명령권과 같은 구제 조치가 빠져 있어 차별구제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선적으로 차별금지법 원안 복귀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으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차별에 대한 인식 전환과 그간 차별받아왔던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최소한이나마 보호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아가 실질적인 차별시정효과가 가능하도록 원안이 보다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안의 차별금지법의 한계 분명함에도 일부 보수 기독교계, 재계 등은 차별금지법의 효과를 의도적으로 과장하고 이를 ‘윤리의 위기, 경제의 위기로’ 포장함으로써 지금까지 그들이 자행해왔던 착취-차별의 순환 고리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 법무부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편안히 차별할 수 있게 해 달라’ 는 재계의 입장과 ‘동성애를 혐오하는 교육을 해야만 한다’는 일부 기독교계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7개 항목을 삭제하였고 4년 여에 걸친 차별금지법의 소망은 순식간에 ‘차별 조장법’ 으로 탈바꿈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 현재 심의 중인 법제처는 사실상 입법예고도, 공식적인 의견 수렴 과정도 거치지 않은 훼손된 차별 금지법을 즉각 반려해야 한다. 또한 법무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헌법상 평등이념을 구현하고,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향상을 도모한다는 차별금지법의 기본 취지를 되새기며 삭제된 7개 항목을 복구하고 차별구제제도를 국가인권위 권고안대로 복원시켜야 한다.

   

우리는 이성애중심적인 정상가족주의에 기반해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에 의해 훼손된 차별 금지법을 전면 거부한다. 우리는 이번 차별금지법 훼손을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로 생각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우리는 파편적인 인권개념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며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

하나. 법제처는 심의 중인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안을 즉각 반려하라.

하나. 법무부는 삭제된 7개 항목과 차별구제제도를 즉각 복원하라.




차별금지법 원안 통과를 위한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긴급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