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6월항쟁 연세대(1987.06.19)
둘, 최루탄 속 `6.10시위`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집회를 끝낸 대학생들이 10일 오후 서울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차도에 누운 채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흩어지고 있다
셋, 연세대 정문 앞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
넷, '한열아 부활하라' 테잎
다섯, '한열아 부활하라' 테잎
여섯, 피흘리는 이한열
일곱,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사진은 1987년 6월 부산 서면로터리의 시위장면
여덟, 6월항쟁 연세대(1987.06.19)
아홉, 최루탄 속 `6.10시위`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집회를 끝낸 대학생들이 10일 오후 서울서대문구 홍제동에서 차도에 누운 채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흩어지고 있다
열,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 권력 승계식이 진행되는 동안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대열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열하나, 6월 10일부터 5박6일 동안 진행된 명동성당 농성투쟁은 6월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열둘, 명동성당 농성투쟁이 진행되는 동안 매일 저녁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민주주의를 공부하는 교실이자 군사독재를 규탄하는 성토장이었다.
열셋, 민가협과 여성단체 회원들이 완전무장한 전경들의 가슴에 평화를 상징하는 꽃을 달아주고 있다
열넷, 87년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에서는 "직선제로 독재타도" "독재지원 미국반대" 구호가 본격적으로 터져 나왔다
열다섯, 해방 이후 최대의 시위인파. 남녀노소와 계급계층을 초월하여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민심은 독재정권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열여섯, 종철아 잘가그래이"
열일곱, 6월 항쟁 당시 시청앞에 모인 시민들
